사진의 메타데이터를 보니 6월 11일 5시 3분에 찍은 것으로 나온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자그니님의 포스트를 참조하면 되겠다.
새벽에 ‘명박산성’에서 깃발을 휘날리기까지 의견충돌이 있었고 나름의 절충안을 찾는 과정이 있었다.
세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스티로폼 자체를 들고온 것을 폭력 시위로 변질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
2. 스티로폼을 명박산성에서 3미터 정도 띄워서 자유발언대를 쌓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입장.
3. 스티로폼을 명박산성에 붙여 쌓아 올라갈 수 있게 하자는 입장.
지난 집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이 날의 분위기로 보아 스티로폼을 쌓아 명박산성을 넘어가자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초기에 Kyoko님이 동아일보 앞에 쌓여있던 스티로폼이 들고 왔을때 논쟁이 있었고 1.과 3.의 절충안으로 2.의 방안으로 정리가 된 듯하다. 중간에서 2.의 방향으로 정리한 인권단체 연석회의측 분들의 생각은 “췟! ‘명박산성’ 쯤은 쉽게 넘을 수 있다구! 우린 넘어갈 수 있는데 안넘어가는거야. 어때? 무섭지?”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3.의 입장의 사람들의(나를 비롯해서) 의견은 쉽게 정리되었다. 인권단체 연석회의측 진행자분은 마이크를 들고 자유발언을 진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뒤에 앉아 ‘비폭력!’ ‘내려와!’ ‘앉아라!’를 외치자 상황은 일단락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스티로폼을 갖고 나온 분과 ‘명박산성’에 오르자는 입장은 ‘명박산성’을 넘어 청와대로 가자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과 물리적인 충돌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그리고 블로그와 아고라 등에서도 스티로폼의 등장 자체를 두고 폭도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비폭력 집회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있었다. 3.의 입장의 사람들은 “‘명박산성’? 웃기고 있네. 니들의 꼼수는 대실패다. 메롱”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자는 것이다. 질서유지를 하고 한사람씩 ‘명박산성’에 올라가서 자유발언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비폭력!’이라는 외침에 의해 간단하게 ‘폭도’로 매도되었다.
혹시 모를 돌박상황에서 발생할 안전문제를 고려한 부분은 이해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우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명박산성’앞은 이러한 논의를 더 이상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후 이어지는 자유발언에서 ‘운동권 쪼’의 웅변연설이 나는 오히려 더 억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금요일 집회의 생활밀착형 발언과는 거리가 먼,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발언들 뿐이었다. 씁쓸했다.
그 이후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져 새벽의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긴하지만 아쉬웠다.
만일 스티로폼이 들어온 초기부터 질서를 유치한채 한사람씩 ‘명박산성’에 올라가 자유발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 정치적 의미는 훨씬 크다. 깃발만 올라간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한 명씩 올라가 청와대에 목소리를 내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놀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로폼이 쌓인다면 올라가서 엉덩이를 청와대쪽으로 까고 한번 신나게 흔들어주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아쉽다.)
초기 충돌의 과정에서 보인 예비군들의 행동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스티로폼을 딛고 올라가려했던 중년 남자분을 대여섯명이 끌어내리고 둘러싼 행위는 대단히 위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렇게 끌어내리면서 그 분은 순식간에 폭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분은 쇠파이프를 들거나 무기가 들려져있지 않았다. 다만 올라가고 싶었을 뿐이다.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폭력 시위를 막기위해 불가피하게 제지하였겠지만 도가 지나쳤다. 혹시모를 폭력 사태를 막기위해 사전에 ‘명박산성’을 쌓은 어청수 휘하 경찰 지도부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되묻고 싶다.
현재 언론에서도 6.10 촛불집회가 별다른 사고없이 비폭력 기조 아래에서 잘치뤄졌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중동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자. 이제 곧 화물연대의 파업을 비롯해 각 노조들의 파업과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수많은 사안들에 대한 시위도 이어질 것이다.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비폭력 기조아래에서도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쪽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참여한 인원이 무려 100만에 육박한다. 당연히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쪽수’가 적다면? 쉽게 무시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까이 예정된 화물연대 사람들의 경우, 적은 인원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100만이 모여 얘기해도 안듣는, 막귀를 가진 정부가 힘없는 적은 ‘쪽수’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줄리 없다. 경찰은 평화적인 시위 문화를 거론하며 폭력시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막기위해 제2, 제3의 업그레이드된 ‘명박산성’을 쌓을 것이다.
이들의 시위 현장이 폭력적인 상황으로 변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는가는 중요치 않다. 경찰이 먼저 폭력을 썼어도 폭력시위에 대한 비난은 언제나 시위자에게 돌아갔던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게 ‘비폭력’을 강요할 수 있는가?
그들이 집단 행동을 하고 폭력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비폭력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지지표명을 할 수 있는지 등등 복잡다단한 문제를 덮어두고 단순히 ‘비폭력’ 세글자만으로 그들을 짓눌러서는 안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폭력인 것이다.
정부나 조중동이 촛불집회의 비폭력적인 면을 칭찬하는 것은 이런 사전 포석일 수 있다. 정신은 썩었어도 머리는 좋은 집단이다. 우습게 보지마라.
현재 촛불집회의 비폭력 기조에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집회는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글자그대로의 의미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 상황은 끔찍하다. 모든 시위에 대해 이러한 ‘비폭력’이라는 간편한 잣대로 판단해버리면 사회적 약자들의 자기 발언 기회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비폭력’이 지배하는 암흑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한가지.
오랜 기간 동안 기득권 세력이 은밀히 추진해온 “착한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가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음모론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착한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인가?
* 위에 동영상이 소리가 안나는데요…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 확장자 k3g)을 티스토리로 올렸을때 소리나게 하는 방법아시는분~~ 좀 알려주세요. PC에서는 들리고… 변환도 해봤는데 안되네요.
13 Comments
참으로 공감하는 글입니다. 비폭력이란 문자적 의미에만 매달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씁쓸했습니다.
그 분위기가 광화문을 짓누르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저도 그런 분위기에 씁슬했습니다.
와~ 공감가는 글입니다. 마지막에 제기하신 음모론도 공감이 ^^
그날 저도 가봤는데 분위기가 좀 그렇더군요.
화물연대가 어떻게 나올지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화물연대는 그나마 좋습니다. 현재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니까요,
그렇더라도 폭력이 발생하면 이렇게 비폭력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지지철회나 비난으로 곧장 이어질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끝난 다음부터가 정말로 걱정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폭력은 애초에 경찰쪽이 선도했습니다. 국민은 무방비로 당했을 뿐입니다. 단하루 몇몇이 쇠파이프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선동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촛불의 주체인 국민은 폭력을 비폭력으로 슬기롭게 굴복시켜오고 있습니다.
폭력을 쓴 당사자들이 피해자에게 폭력운운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이명박 정부의 궤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인 것이죠. 불난집에 기름을 들이 붓는 등신들의 코메디에 쓴웃음으로 비웃는 국민,, 이제는 그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단것을 느끼고 끌어내리는 길만이 해법이라는 공감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이 언제나 끝날까요…
“비폭력도 폭력이다” 라는 화두에 대해서는 동의 하지만,
비폭력을 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을
폭력이라고 반발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각자의 자발적인 목소리를 위해서 개개인은 참가했겠지만,
다수의 비폭력을 원하는 사람들이 뜨거운 심장과 열정이 없어서
자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수준을 “착한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 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고 위험한 사고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비폭력이라는 폭력을 쓰고 있는건 맞습니다.
그 명분 덕분에 수십만이 길거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이겠죠.
훌륭한 무기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촛불문화제의 비폭력 기조는 꿈틀꿈틀님의 말씀대로 시민들의 슬기로운 해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고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비폭력을 과도하게 강제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항상 경계를 해야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논쟁 속에, 또다시 합의를 찾아나가겠지요-
저는 스티로폼 사태를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11일 새벽상황을 자그니님이 잘정리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