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누구나 어느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거나 사랑을 했다. 세상의 모든 드라마가 사랑에 빠진 연인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랑을 노래한다. 평소에는 연락도 없던 여자 동창 녀석이 연락하는건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뿐이다. 나는 그 하소연을 지겹게 들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언젠가 나도 그 친구를 부여잡고 울며불며 상담을 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나의 결혼한 친구 한 놈은 가끔 채팅으로 여자를 꼬셔내 하룻밤을 보내곤 한다. 그런 그의 행동에 ‘불륜’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엄마의 일기장>이라는 다큐가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한 아들이 자신이 전혀 몰랐던 가족사를 알아가는 얘기다. 평온한 줄만 알았던 부모님은 성격차로 불화를 겪었고 아버지는 직장 비서와 연애도 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 아빠, 엄마도 사람이지.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이란걸 할 줄 알고, 사랑을 했던 사람이지.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해본 걸까? 나와 부모님 사이에 무슨 큰 벽이 있길래. 남들 다하는 그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을 못한 걸까? 그렇구나, 나는 부모님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구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타인이 어떤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려고 노력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그건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본적인 도구다. 그런데 그 도구는 왜 나의 부모님에게는 쓰이지 않았던 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걸까?
아, 공감을 했던 적이 몇번 있긴 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이 이렇게 거지 같은 거구나’, ‘집 한칸, 방 한칸 얻기 더럽게 힘드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아버지도 얼마나 울분을 삼켰을까하고 잠깐 생각했었다. 겨우, 몇번.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지금의 아버지 세대들, 조금 좁혀서 ‘베이비부머’ 세대들과 그들의 아이들 세대가 일자리 같은 한정된 자산을 두고 경쟁해야하는 현 상황을 격하게 표현한 것이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우리의 아버지들은 젊음을 바쳐 뼈빠지게 일했다. 그래서 아파트 한칸 장만했고, 자식들은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이제 그들은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의 아이들은 아직 뼈빠지게라도 일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나약하고 무능해서가 아니다. 일자리가 없다. 독립하려해도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
베이비부머 아버지가 말한다.
얘야, 우린 젊음을 바쳐 가족을 부양했고, 나라를 일으켰다. 그래, 너희들이 살기에 각박해졌다는 건 인정할께. 그렇지만 열심히 일한 덕에 네가 어학연수도 갔다올 수 있었고, 폼나는 핸드폰도 갖을 수 있는거란다. 난 곧 은퇴해야 된단다. 이젠 내 삶을 살고 싶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이 아파트를 팔아 작은 평수로 이사갈 계획이다. 그렇게 생기는 여유자금으로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해볼 생각이다. 난 사진을 찍어보려고 한다.
미안하다, 얘야. 이젠 좀 이해해주렴.
베이비부머의 아이들이 말한다.
요즘 너무 힘들어요. 조금만 더 울타리가 되어 주세요. 지금 제대로된 자리를 차지 하지 못하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되요. 여태 큰 힘이 되어 주셨잖아요. 왜 이제 안되는 건데요? 일자리도 없고 방 한칸 얻기 힘들어요. 이렇게 만든 것도 아버지 세대 잖아요.
이렇게 만들어 놓고 사진이나 찍으시겠다구요?!
두 세대간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 그대로 간다면 아마 베이비부머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었을때나 화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버지가 된 베이비부머의 아이들은 시궁창같은 삶 속에 허우적거리며 베이비부머를 여전히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아버지도 한때 사랑에 아파하며 종로거리를 비틀거리며 토악질을 했던 어린 사내였고, 어머니도 소싯적엔 뭇 사내들과 정을 통했던 물오른 처녀였다. 반항기 많은 지금의 청춘도 언젠가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어 치열하게 살 것이다. 때론 좌절도 할 것이고 성취도 맞볼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 세대의 인간이 그러했듯 청춘도 늙고 병들어 갈 것이다. 유전자가 99.999% 같다는 아버지와 아들도 서로 공감하지 못한다면 다른 부모, 다른 자식에 대해서는 더욱 큰 간극을 발견하게 될 것은 뻔하다.
장동건보다 더 조각같았다던 아버지의 청춘시절 사진.
취직 시험에 지쳐있지만 꿈은 잃지 않고 있는 딸의 미니 홈피.
그 안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경험을 이야기로 빚어내고 그 의미가 타인에게 공명될 때, 인생은 ‘살맛’이 난다. ” – 김찬호 <생애의 발견> 서문 중에서
– 어느 기획안을 위해 적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