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2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은 많다. 대개는 네비의 안내대로 서울에서 제일 빠르게 갈수 있는 고속도로로 먼저 올라가서 최고 속력으로 달린 후 빠져나와 부산의 최종 도착지로 가는 경로다. 그러나 지도앱으로 보면 수만가지 경로를 짤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많다. 지난번에 부산 갈일이 있어 국도를 타고 부산까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간에 들러야 하는 곳도 있어서 경로를 찾아보니 31번 국도가 기장까지 간다. 31번 국도는 양구에서 시작하는데 시작점까지 거슬러가긴 그렇고 해서, 제천에서 빠져서 영월 즈음에서 31번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로 들어서면 내비는 필요없다. 도로 표지판에 31번을 보고 쭉 따라가면 된다. 네비가 없던 시절엔 아마 이런 식으로 다녔을 것 같다. 국도를 달리다보면 최대한 느리게 가고 싶을 정도로 주변 […]
2024년 08월 16일
우리가 어떻게 정보를 인식하고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몇가지 실험이 있다. 앤더슨, 피커트(1978) 두 아이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묘사하는 걸 읽게 했는데, 그 아이가 ‘도둑’이라고 생각한 그룹은 보안시스템이나 비싼 물건 같은 정보를 더 잘 기억했고, ‘집 매수자’라고 생각한 그룹은 집의 구조적 특징을 더 잘 기억했다는 것이다. 브랜스포드, 존슨(1973)어떤 문장을 읽게하고 그 문장이 ’40층에서 평화행진을 지켜보기’라는 제목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을 때 문단의 세부사항을 더 잘 기억했다. 이렇게 우리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일때 사고의 틀이 되는 걸 도식(Schema)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특정한 도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맞는 것들을 위주로 받아들이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에 뇌가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인가도 싶다. (전문연구자가 아닌 입장에서 일단 […]
2024년 06월 20일
좋은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인상깊은 장면이 떠오를 수 있고, 드라마의 어떤 에피소드에서 내가 느낀 슬픈 감정이 기억 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이야기 속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기억에 남고 어떤 것은 그저 스쳐지나갈까?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 우리의 기억이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기억을 좀 더 세분한다. 연극을 한편 보고 있다고 하면, 이런 경우가 있다. “철수가 사생아였어? 아~ 그래서 철수가 그랬었던거구나~” “영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렇게 얘기했잖아, 그 대사 못들었어?” 그 대사를 못들었을까? 들었다. 청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배우의 대사는 감각기억으로 잠시 저장되었다가 단기기억으로 저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작업기억 단계 즈음에서 의미있는 […]
2024년 06월 02일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둘 만 남은 술자리에서 후배와 시시콜콜 이야기가 길어졌다. 실패한 연애사부터 가까운 사촌어르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집안의 가족력까지.‘너 안가니?’속으로 가끔 이 말이 나왔지만, 듣었다. 그리고 또 나도 말했다. 필립스스마트전구가 만들어낸 무대조명같은 분위기 아래에서 이야기는 깊어져 갔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우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3월초에 본 연극 <비와 고양이와 몇개의 거짓말>이 떠올랐다.후타로라는 인물의 생일날 벌어지는 이야기다. 60세 생일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과 생의 몇몇 지점의 생일날이 교차된다. 그저 생일날 벌어진 일들을 보여줄 뿐 흔히 말하는 ‘극적인 사건’이 없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울컥 울컥 마음을 움직인다.뭐지? 이 연극?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흔한 가족사일 수 있는데 왜 나는 눈물을 글썽이는가 말이다. 연극 […]
2024년 01월 01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대부분 잘 읽힌다. 일부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흥미진진하다. 소설 공장이다 싶을 정도로 작품을 끊임없이 내놓는데도 여전히 잘팔리는 그 만의 비결? 뭘까? ‘미스터리’가 그 해답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범죄물이 아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나 <삼나무의 파수꾼> 같은 작품도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를 던져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마도 그래서, 궁금증을 가지고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든다. 궁금증, 그러니까 설명이 안되는 불확실한 부분을 반드시 메꿔야 하는 뇌의 작동 기제가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한가지 동력이 될 것이다.그래서인지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 이후로 이런 미스터리함을 멜로물에서도 극적 장치로 종종 사용된다. 범죄물이나 스릴러물이 아닌데도 말이다. 한쪽에서 알콩달콩 사랑하는데 주변에선 살인 사건이 […]
2023년 10월 27일
요즘 인스타그램 피드에 지겹게 뜨는 장안의 화제, 슬릭백. 지난 글을 쓰면서 보니 슬릭백 춤이 공중부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뇌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예측기계다” 프레임 단위로 보면 한 발이 땅에 분명히 닿는게 보이지만 연속해서 보면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략 시각 인지의 관점에서 추론해보면 이렇다. 발을 내딛는 동작은 되도록 크게, 빠르게 한다. > 움직임 때문에 시선이 주목되고, 뇌가 내딛는 발을 주된 시각 영역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그 발이 떠있다는 정보가 우선하게 된다.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다.) 내딛는 동작 이후에는 다리 전체는 고정하면서 이동 방향으로 밀어주다가 살짝 발을 내딛게 한다. > 다리는 움직임이 없이 그대로 이동 방향을 […]
2023년 10월 24일
편집된 영상을 볼때 ‘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개는 연속된 동작이나 상황에서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중간 부분을 잘라내서 일정시간 ‘점프’한 경우이거나 갑자기 연결성이 없는 영상이 이어지는 경우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뇌는 예측기계다’라는 관점으로 보면 ‘튄다’는 느낌은 뇌의 예측 실패에서 오는 일시적인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 경험을 생각해보면 대개의 경우는 연속성을 갖는다. 나를 둘러싼 풍경들은 시선을 돌리는 것에 따라 이어져 있고 사람이나 자동차는 가던 방향대로 간다. 그런데 영상은 다른 시간과 상황의 것들을 임의로 이어붙였기 때문에 튀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뛰어가는 장면을 장면을 보자. 앞 장면에서는 화면 상으로는 오른쪽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뇌는 미리 이 사람이 […]
2023년 09월 08일
아름다운 얼굴은 시선을 끈다. 성인만이 아니다.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는 아기도 아름다운 사람을 더 오래 쳐다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얼굴에는 우리의 본성 같은 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여러 이론들을 종합해보면 평균적이고 대칭적인 얼굴이고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특징들(성적 이형 性的 異形)이 조금 더 강조될 때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 얼굴의 미에 대해 문화적으로 학습된 요인들도 작용할 것이다. 평균적이고 대칭적인 얼굴에 대해서는 그것이 건강의 지표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주로 설명한다. 그런데 ‘최적 인지 효율’ 관점에서 보면 평균적이고 대칭적이라는 것은 빠르게 인지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의 얼굴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인간은 얼굴 인식 모듈이 따로 있다고 할만큼 – 이 […]
2023년 09월 07일
길가던 중 광고물 속 멋진 사진에 시선을 빼앗길 때가 있다. ‘아름답다! 멋지다!라는 느낌’이다. ‘아름답다’는 그 느낌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인지할 때 나타난다. 즉, 아름답다는 것은 가장 효율적으로 인지될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신경미학에서 이를 ‘정보처리의 유창성(fluency)’으로 표현하는데, 실용적인 맥락에서 ‘최적 인지 효율성’으로 부를 수 있을 듯 싶다. 미(美),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으로 균형, 대칭과 같은 조형적 요인이라던가 성적 선호와 같은 진화심리학적 요인 등 몇가지 개별적인 요소들을 든다. 그런데 우리가 미적 대상을 접할때 우리는 ‘아름답다! 멋지다!’는 느낌을 지속하고 그 과정 중에 그 대상이 지닌 여러 아름다움의 요소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즉, 미감이 미의 토대인 셈이다. 이걸 생각한다며 개별적인 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