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이 글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이미지의 속성상 내가 본 그대로 찍힌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뭘 찍은거야?” 혹은 “왜 저걸 찍은거야?” 라거나 “그래서 저 동영상은 무슨 얘길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의사소통이 안되는 겁니다. 다음의 동영상을 한번 보시죠.
이 동영상은 어느 영상 수업에서 일본 학생이 만든 작품 중에서 골라 재연해본 것입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영상물을 만드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위의 동영상에는 한국인들의 어떤 독특한 행동이 담겨있을까요?
바로 공중전화를 사용한 후 잔돈을 남겨두는 행동입니다. 일본 학생에게는 그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일본인에게는 나름 의미있는 문화적인 발견인 셈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위의 동영상을 보고 일본학생이 발견한 것이 “잔돈을 남겨둔” 것을 알 수 있었나요?
오히려 글로 표현하는 것이 나을뻔 했습니다.
마음 속의 문장 – “어떤 한국사람이 공중전화를 사용한 후에 잔돈이 사라지지 않도록 한다”
영상에 표현된 문장 – “어떤 한국사람이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문장으로 바꾸면 이렇게 될 듯 합니다. 물론 영상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잔돈이 사라지지 않도록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지나가는 동영상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정지된 사진이라고 해도 이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찍은 사람’은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니 거기 찍혀있는데 왜 그걸 못보냐? “
자 다음 영상을 보시죠.
EBS에서 방영한 <인간의 두얼굴> 시리즈 중에서 발췌한 영상입니다. 착각에 대해 설명하기위해 실험한 것이지만 이 실험은 이미지를 다루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제공합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바보같다고 웃었을지 모르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실험상황에서 똑같은 바보짓을 할 것입니다. 이 실험은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를 보여줍니다.인간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일때 매순간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 컴퓨터로 따지면 CPU 등 처리 속도나 용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우선으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위 영상에서 피실험자들은 본인이 집중하게 된 시각-청각 등의 정보를 우선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얼굴 생김새 등에 대한 정보는 굳이 자세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지 구조의 한계라기보다 어쩌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행동하고 판단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우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인지적 특성을 고려해보면, 이미지는 텍스트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한번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동영상의 경우) 노출시키기때문에 오히려 텍스트에 비해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화면 안의 ‘모든 것’을 ‘한번’에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미지를 볼때 선택적으로, 차례차례 보게 됩니다. 누구나 그러합니다. 이미지를 쓰거나 읽을때 이 근본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주변에 잡지가 있다면 앞부분의 광고 페이지를 한번 펼쳐 보십시오. 대충 한페이지 전체를 훑은 다음, 크게 자리잡은 섹시한 여자모델, 광고의 헤드카피 등등의 순서로 한 페이지의 광고를 순차적으로 읽게 될 것 입니다. 이것은 광고에서 강조하고자하는 것을 위해 시각적으로 계획된 우선 순위에 따라 눈이 움직여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카메라를 들고 도심을 헤매다가 왠지 쓸쓸해보이는 나무 한그루를 찍었는데 모니터에 띄워놓고 보면 아무 느낌이 없는 경우입니다. 아마도 지금 PC안에 이런 사진이 수두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떠올린 내부의 심상과 사진의 결과물 사이에서도 당장 간극이 발생한 것 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배워보려던 초창기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찍는거냐구?
선배나 선생님의 답입니다.
간단해, 많~이 찍어봐!
참 간단하죠? 일단 믿고 필름도 여러통 쓰고 인화비도 수억 갖다바치면서 어느 유명 사진가의 사진에세이책을 봅니다.
매순간 피사체와 사랑에 빠져라!
참 폼나는 말입니다. 물론 맞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진가의 얘기가 무엇인지 깨닫기까지, 그것이 사진에 표현되기까지는 참으로 막연한 여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여러달 방치해두던 블로그에 영상 읽기/쓰기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강의나 메모해두었던 것들을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영상을 향한 막연한 여정에 가이드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