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철책근무할 때 일이다. 경계근무를 맡고 있는 비무장지대 전역에 불이 났다.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숲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위해 3월 전후로 간혹 불을 지른다. 화공작전이라고 한다. 우리 쪽에서도 불을 지를때도 있다.
우리 소대가 맡고 있던 지역은 제2땅굴 근처였다. 경계근무를 서던 초소는 막사에서 한참 올라가야 되는, 철원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막사에서 연기가 뿌옇게 퍼져있길래 뭔가 했더니 화공작전이란다. 조금 지나니 가끔씩 뻥- 뻥- 하는 소리가 언덕 너머에서 들려왔다. 멀리서 들리는데도 상당히 큰 소리였다. 불이 마른 풀잎이나 나무들을 타고 번지다가 비무장지대에 매설된 지뢰들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쯤되니 아예 경계 초소에 올라가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거의 하루 이상 지나서야 수그러진 것 같다.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하늘을 가득 메운 검붉은 연기와 뻥- 뻥- 하는 지뢰터지는 소리다. 대낮이었는데도 검은 연기로 거의 밤이나 다름 없었다. 막사 하나만 겨우 보이는 그런 상태였다. 그런 연기에 붉은 화염이 비치면서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그냥 세상이 모두 불타고 있는 듯했다. 거기에 계속 폭발음이 들리는 상황.
그때 생각했다. 아- 전쟁나면 이렇게 되겠구나, 포탄 떨어지고 불나고. 포탄이 떨여져서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니라 어딘가에 불이 날거고 이렇게 완전히 검붉은 화염에 휩싸이겠구나. 불끄는 것도 사치스러운 상황일테고.
막사에만 있어서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검붉은 화염과 폭발음이 주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했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전쟁에 대한 시각적, 청각적 경험으로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