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얼굴에 어떤 표정을 인위적으로 만들면 그 표정과 관련된 감정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안면 피드백 가설) ‘하하하’ 소리내어 웃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웃음치료가 이 이론의 적용사례일 것이다.
배우의 연기술과 연결해보면, 배우의 내재적인 감정이 얼굴의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 반대, 즉 의도적으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다른 이론에서는, 감정은 뇌의 특정 부분이나 얼굴의 표정 같은 것들이 일대일로 대응하여 촉발되거나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뇌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서, 신체 감각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의 뇌가 구성해 낸 것이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다. (구성된 감정이론)
이 관점에서 배우의 연기를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 이전의 관점에서라면 배우 자신의 감정으로 촉발된 신체와 얼굴의 표정으로 극 중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고 관객은 극 중 인물과 심리적 동기화되는 듯 그 감정을 느낀다고 본다. 반면에 감정이 무대나 영상 속의 배우를 보고 관객 각자가 구성해낸 것이라면 배우는 그저 소재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봐야 되는 듯 하다. 배우의 연기가 폄하될 수 있는 이론인가 싶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배우의 감정 – 움직임/표정 – 감정의 전달 이렇게 단순하게 이어지는 것에 비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 구성될 수 있도록 다양하고 복합적인 경로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관점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연기이고 배우의 역할은 더 커진다. 분노의 감정을 소리 지르고 화난 표정을 지어 표현할 수 있지만, 관객이 극 중 인물이 처한 상황과 성격을 이해하고 있다면 피식피식 이죽거리며 작은 소리로 웅엉대는 게 더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후자가 더 나은 연기다.
이 감정이론에 따른다면 배우는 극 중 인물의 감정을 관객들이 구성할 수 있도록 연기해야 한다. 흔히 배우는 극의 해석을 통해 내부적으로 촉발된 감정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극이 작동하는 요소들에서 중심은 관객이 구성할 감정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으면서 생각이 가지쳐 나가 배우의 연기에도 이어졌다. 최신 과학 이론의 관점에서 배우의 연기를 잠깐 생각해봤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데, 누군가 접목을 시도한다면 여전히 모호하고 막연한 언어로 기술되는 연기술의 언설들에 비해 조금 더 구체적인 실체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