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둘 만 남은 술자리에서 후배와 시시콜콜 이야기가 길어졌다. 실패한 연애사부터 가까운 사촌어르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집안의 가족력까지.
‘너 안가니?’
속으로 가끔 이 말이 나왔지만, 듣었다. 그리고 또 나도 말했다. 필립스스마트전구가 만들어낸 무대조명같은 분위기 아래에서 이야기는 깊어져 갔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우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3월초에 본 연극 <비와 고양이와 몇개의 거짓말>이 떠올랐다.
후타로라는 인물의 생일날 벌어지는 이야기다. 60세 생일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과 생의 몇몇 지점의 생일날이 교차된다. 그저 생일날 벌어진 일들을 보여줄 뿐 흔히 말하는 ‘극적인 사건’이 없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울컥 울컥 마음을 움직인다.
뭐지? 이 연극?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흔한 가족사일 수 있는데 왜 나는 눈물을 글썽이는가 말이다.
연극 <비와 고양이와 몇개의 거짓말>은 반복과 중첩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기본 얼개가 되는 후타로의 생일이라는 이벤트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후타로의 삶에 대한 정보를 하나둘 알게 된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후타로가 어떻게 태어나게 된것인지, 아들과 딸과는 어떤 관계인지 등등.
또한 후타로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과 중첩된다. 개개인의 삶은 타인의 삶들과 겹쳐있기 마련이다. 연극에서는 후타로의 주변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후타로의 삶에 대한 다른 층위의 정보를 알게 된다. 후타로의 엄마와 후타로의 딸, 거기다 고양이까지.
연극 후반부에 느끼는 감정은 후타로의 생일과 둘러싼 여러 일면들을 보면서 재구성된 연극 속 세계와 후타로라는 인물의 상을 바탕으로 한다. 만일 이것이만들어지지 않으면 감정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없으면 아무리 배우가 격정적으로 연기를 하더라도 나는 울컥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60번째 생일날 후타로가 느낀 복잡한 감정을 전해 받으려면 우선 후타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들이 이 점을 건너뛰는 것 같다.
별다른 사건 사고나 스펙타클이 없이 후타로의 삶을 이해시키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의 본질적인 작동 방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비와 고양이와 몇개의 거짓말>이 빛나는 지점이다.
여기에 더해 이 연극은 연극적 장치들을 통해 우리가 집중해야할 후타로의 삶의 일면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극처럼 특별한 무대전환없이 무대 위에서 여러 역할을 바꿔가며 연기한다. 관객은 이미 후타로의 생일날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후타로에 대해 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 이외에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무대를 구성해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다.
어린 후타로를 60대의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할때, 어차피 어린이와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관객도 그걸 바라는게 아니다. 이런 연극적인 약속아래에서 무대가 만들어지는데, 후타로역의 배우 이근희는 그 적절한 선을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다른 배우들도 이런 관객의 기대를 깨지 않는다.
이야기의 작동방식에 부합하는, 연극성에 기반한 효율적인 장치를 통해 연극 속 세계와 후타로의 삶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끌어낸다.
술자리에서의 대화와 연극과 영화, 드라마 속 이야기 속에서 누가 무얼했다는 얘기는 결국 같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어떤 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하고, 또 다른 사람이 경험한 세상의 상을 들여다 보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구를 기반으로 이야기는 굴러간다.
각자의 세계에 갖힌 깡통일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세계를 마주하며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듣고, 또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