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정보를 인식하고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몇가지 실험이 있다.
앤더슨, 피커트(1978)
두 아이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묘사하는 걸 읽게 했는데, 그 아이가 ‘도둑’이라고 생각한 그룹은 보안시스템이나 비싼 물건 같은 정보를 더 잘 기억했고, ‘집 매수자’라고 생각한 그룹은 집의 구조적 특징을 더 잘 기억했다는 것이다.
브랜스포드, 존슨(1973)
어떤 문장을 읽게하고 그 문장이 ’40층에서 평화행진을 지켜보기’라는 제목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을 때 문단의 세부사항을 더 잘 기억했다.
이렇게 우리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일때 사고의 틀이 되는 걸 도식(Schema)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특정한 도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맞는 것들을 위주로 받아들이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에 뇌가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인가도 싶다. (전문연구자가 아닌 입장에서 일단 말을 아끼자!)
이런 연구를 보면 글쓰기나 이야기 작법에서 초반 부에 ‘기’, ‘발단’이라던가 ‘설정’과 같이 ‘이 얘기는 앞으로 이런 얘기가 될 거에요’ 라는 부분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일단은 하고자 하는 얘기가 정리가 안된게 가장 큰 걸림돌일 수도 있을테고, 하나의 결과물 안에 여러가지를 집어넣으려다보니 도식을 선명하게 하지 못하는게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이런 도식과 기억에 대한 것은 특히 이야기의 세부 단계에서 문제를 유발할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의 경우, 전체 이야기를 10여개 정도의 시퀀스로 나누어서 구성하게 되는데, 개별 시퀀스에서 분명한 도식이 잡히지 않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쭉 사건전개되는대로 보여주면 되는게 아닌가도 싶지만 이 인지심리학의 실험들을 보면 분명한 하나의 도식에 하나의 시퀀스가 진행되는 것이 유리한건 분명해보인다.
아울러서 기억연구에서 사용되는 방법인 DRM 패러다임도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듯 하다.
DRM 패러다임(Deese-Roediger-McDermott Paradigm)
기억연구에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 예를 들어, 침대, 꿈, 피곤한, 코골이 등과 같이 잠을 주제로 한 단어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최대한 기억하라고 했을때, 단어 목록에는 포함되어있지는 않은 주제어인 ‘꿈’도 보았다고 확신한다.
이런 방법은 주로 마케팅에서 제품이나 서비스와 연관해서 강조하고자하는 키워드를 은연 중에 전달하고자 할때 쓴다. 그외에도 크게는 여론 조작이라던가, 작게는 소송 관련 서류 같이 어떤 주장을 해야하는 글의 작성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쓴다.
영상 다큐를 편집할때 멋진 장면이나 예쁜 대상들에 현혹되어서 하고자하는 주제를 벗어난 것들로 채우는 실수를 하곤 한다. 꼭 그런 것들에 현혹되지 않더라도 세부적인 컷들, 대사들을 다루다보면 중심 주제와 멀어지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은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창작자가 통제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관객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정도는 분명히 하고 그것을 위한 도식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인지심리학> 존 폴 민다,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