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개의 조작을 통해 촛점이 맞는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말그대로, 보는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촛점’을 두어야 할 곳과 그 범위를 지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의 일상적인 시각 경험은 딥포커스(deep focus: 촛점이 맞는 범위가 아주 깊은) 상태입니다. 대신 우리는 선택적으로 시각 정보를 읽어서 보고자하는 것, 중요한 것들을 먼저 받아들이게 됩니다. 조리개는 실재의 세계를 이미지로 담을 때 선별적인 조작을 가능케하는 아주 매력적인 장치입니다. 적절한 조리개 조작을 통해 이미지에 담을 것을 취사선택하고 시각적인 중요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심도를 너무 얕게하면 당연히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때로는 주된 피사체를 둘러싼 많은 정보들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인지, 언제인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인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등등. 심도가 얕은 사진은 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는 정돈되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때론 껍데기뿐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은 심도가 너무 얕아서 아쉬운 사진입니다.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아이와 교실 벽까지 촛점이 맞았다면 훨씬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되었을 겁니다. 뒤의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앞의 아이를 바라보는지, 이 교실은 어떤 곳인지 등등이 보여진다면 훨씬 풍부한 문맥의 이미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래의 사진과 같이 한 인물의 표정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의 한 소녀를 찍은 스티브 맥커리의 유명한 이 사진은 인물의 얼굴에만 포커스를 두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은 한동안 우리의 시선을 잡아둡니다. 사진의 심도는 얕지만 촛점이 맞춰져있는 얼굴 안에 디테일한 읽을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소녀의 강한 눈동자와 약간의 검둥이 묻은 얼굴, 헤어진 옷, 굳게 다문 입 등등. 어떤 분은 여기에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니하는 코멘트를 합니다만 이 사진 어디에도 그런 컨텍스트는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내셔널지오그래픽지의 표지로 실린 사진이니 기사를 통해 아프카니스탄의 상황과 여성들의 삶 등등의 사진에 대한 서브텍스트가 제공되었겠죠. 또한 스티브 맥커리는 일련의 사진 작업을 통해 꾸준히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엔 심도가 깊은 사진을 한번 살펴보죠. 아래의 브레송의 사진을 보면 앞에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시작해서 뒷쪽의 아이들의 동작 하나까지 찬찬히 둘러보게 됩니다. 국내작가인 인효진의 아래 작품도 전면의 잔디밭에서 후면의 호수 저편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각적으로 완결된 이미지가 되려면 프레임안의 모든 것들이 짜임새있게 하나의 구도 아래 배치되어야 합니다. 모든 시각 요소들이 잘 어우러진 이런 사진들을 보게되면, 가장 먼저 눈이 가는 주된 피사체를 거쳐서 어느 새 사진의 구석구석까지 바라보게 되는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문맥이 풍부한, 읽을 거리가 많은 사진입니다.
그러나 스튜디오가 아닌 이상 주된 피사체 외에 여러 시각 요소들을 완결된 구도 아래 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진의 고수들은 딥포커스(deep focus)를 추구하고 아마추어들은 아웃포커싱(out of focus )된 사진을 선호한다 소릴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인터넷의 사진 갤러리를 둘러보다보면 심도가 얕은 사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간혹 ‘결정적인 순간’을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심도가 너무 얕아서 아쉬운 사진들이 있습니다. 심도가 얕은 사진의 손쉬운 이미지에만 익숙하여 사진에 담겨야할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피적인 이미지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