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베트남 참전용사가 아니다. 6.25를 겪은 세대도 아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전쟁 비스므리한 기억이 될 듯 하다. 3가지가 떠오르는데 기억을 잡아두기 위해 적어본다.
전방부대 있을때 일이다. 어느날 새벽 5~6시경에 데프콘2가 발령됐다. ‘비상! 비상!’ 외쳐대도 모두들 그냥 훈련 상황이겠거니 했다. 간혹 밤이나 새벽에 뜬금없이 훈련상황을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라는거다. 그리고 실탄을 나눠준다! 그제서야 다들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때 한 일병쯤 됐을때지만 병장들도 그때까지 실탄들고 훈련나가본 적이 없었다. 아마 지금도 일반 사병들은 사격할때 말고 실탄을 만져볼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탄창주머니 양쪽이니까 6탄창 180발(기억이 가물가물한데, 4~5탄창일수도…)을 받은 것이다. 수류탄은 개인에게 주지는 않았고 소대 단위로 박스에 준 것 같다. 데프콘2는 한마디로 ‘곧 전쟁’이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러니 고참들도 훈련 때처럼 군장(배낭)을 텅텅비우지 않았다. 챙길건 다 챙겨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소위 FM대로 넣고 정해진 진지로 이동했다. 육군 보병은 그냥 땅파놓은 곳에 있는게 전시때 하는 일이다. 그러다가 밀리면 다른 진지로 이동한다. 단순하다. 훈련 때도 하는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동하고 그런 류의 일이다. 지금같은 대량살상무기 체계에서는 아마 전방 보병은 거의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 아침에 진지에 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진짜 전쟁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총을 쏠 수 있을까? 후방은 어떻게 되는거지? 부모님은? 휴가 나간 XX상병은 어떻게 되는거지? 진짜 죽는건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표정들이었다. 점심 전까지는 서로 대화도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점심, 저녁도 훈련 때처럼 밥차를 대놓고 먹고 그러지도 않았다. 주변 이 산 저 산에도 병력들이 깔린게 보였다. 민간인 통제 구역 안이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설마 전쟁까지 나겠어라고 얘기를 하긴 했지만 분위기는 진짜 전쟁 전인 것만 같았다.
결국 이 상황이 훈련이었음은 밤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투준비태세 점검을 불시에 진행한 것이다. 그것도 사단 전체에 대규모로 말이다. 그럼 그렇지 하며 허탈해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의 막연한 두려움은 여전히 기억난다. 일종의 몰래 카메라 같다고나 할까? 정보가 통제된 상태에서는 주어진 정보로만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그때의 상황은 ‘곧 전쟁’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군생활을 하며 사격을 하기도 하고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전쟁 상황을 그렇게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려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가끔 어떤 정신나간 놈들의 전쟁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때면 나는 그 아침 진지 안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알 수 없는 두려움말이다. 설마 전쟁나겠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