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에 한목소리를 내기위해 나온 인파들이 서울 사대문안을 거의 다 메웠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왔음에도 불상사가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다.
명박산성이 보여준 이명방의 불통에 대항하여 오랜 공성전을 벌인 끝에 ‘명박산성’을 점령한 것은 성공의 마침표가 되었다. ‘명박산’ 고지에 깃발을 꽂고 이명박 정부와 경찰을 크게 꾸짓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이다. 그것도 아주 평화롭게.
정치는 상당 부분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명박이 부시와 통화를 하는 것도, 촛불을 들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다 정치적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일보 앞에 쌓인 스티로폼을 들고온 Kyoko님의 아이디어는 훌륭했다. 아고라에서 보았던 촛불집회, 물리력보다 상상력 필요하다는 제언을 충분히 반영한 생각으로 보여진다. 생각해보라. 이명박 정부의 막가파식 소통불능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명박산성’을 사뿐히 올라가 환호할 수 있는 모습, 얼마나 멋진가. 각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 실린 이 새벽의 사진은 그 정치적 의미를 사방에 전달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자그니님의 포스트를 참조하면 되겠다.
새벽에 ‘명박산성’에서 깃발을 휘날리기까지 의견충돌이 있었고 나름의 절충안을 찾는 과정이 있었다.
세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스티로폼 자체를 들고온 것을 폭력 시위로 변질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
2. 스티로폼을 명박산성에서 3미터 정도 띄워서 자유발언대를 쌓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입장.
3. 스티로폼을 명박산성에 붙여 쌓아 올라갈 수 있게 하자는 입장.
지난 집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이 날의 분위기로 보아 스티로폼을 쌓아 명박산성을 넘어가자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초기에 Kyoko님이 동아일보 앞에 쌓여있던 스티로폼이 들고 왔을때 논쟁이 있었고 1.과 3.의 절충안으로 2.의 방안으로 정리가 된 듯하다. 중간에서 2.의 방향으로 정리한 인권단체 연석회의측 분들의 생각은 “췟! ‘명박산성’ 쯤은 쉽게 넘을 수 있다구! 우린 넘어갈 수 있는데 안넘어가는거야. 어때? 무섭지?”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3.의 입장의 사람들의(나를 비롯해서) 의견은 쉽게 정리되었다. 인권단체 연석회의측 진행자분은 마이크를 들고 자유발언을 진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뒤에 앉아 ‘비폭력!’ ‘내려와!’ ‘앉아라!’를 외치자 상황은 일단락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스티로폼을 갖고 나온 분과 ‘명박산성’에 오르자는 입장은 ‘명박산성’을 넘어 청와대로 가자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과 물리적인 충돌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그리고 블로그와 아고라 등에서도 스티로폼의 등장 자체를 두고 폭도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비폭력 집회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있었다. 3.의 입장의 사람들은 “‘명박산성’? 웃기고 있네. 니들의 꼼수는 대실패다. 메롱”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자는 것이다. 질서유지를 하고 한사람씩 ‘명박산성’에 올라가서 자유발언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비폭력!’이라는 외침에 의해 간단하게 ‘폭도’로 매도되었다.
혹시 모를 돌박상황에서 발생할 안전문제를 고려한 부분은 이해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우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명박산성’앞은 이러한 논의를 더 이상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후 이어지는 자유발언에서 ‘운동권 쪼’의 웅변연설이 나는 오히려 더 억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금요일 집회의 생활밀착형 발언과는 거리가 먼,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발언들 뿐이었다. 씁쓸했다.
그 이후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져 새벽의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긴하지만 아쉬웠다.
만일 스티로폼이 들어온 초기부터 질서를 유치한채 한사람씩 ‘명박산성’에 올라가 자유발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 정치적 의미는 훨씬 크다. 깃발만 올라간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한 명씩 올라가 청와대에 목소리를 내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놀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로폼이 쌓인다면 올라가서 엉덩이를 청와대쪽으로 까고 한번 신나게 흔들어주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아쉽다.)
폭력을 정당화하고 조장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비폭력’이라는 1차적 의미만 가지고 ‘비폭력’을 비이성적으로, 종교적인 신념에 가까운 형태로 강제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는 또다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 충돌의 과정에서 보인 예비군들의 행동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스티로폼을 딛고 올라가려했던 중년 남자분을 대여섯명이 끌어내리고 둘러싼 행위는 대단히 위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렇게 끌어내리면서 그 분은 순식간에 폭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분은 쇠파이프를 들거나 무기가 들려져있지 않았다. 다만 올라가고 싶었을 뿐이다.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폭력 시위를 막기위해 불가피하게 제지하였겠지만 도가 지나쳤다. 혹시모를 폭력 사태를 막기위해 사전에 ‘명박산성’을 쌓은 어청수 휘하 경찰 지도부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되묻고 싶다.
현재 언론에서도 6.10 촛불집회가 별다른 사고없이 비폭력 기조 아래에서 잘치뤄졌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중동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자. 이제 곧 화물연대의 파업을 비롯해 각 노조들의 파업과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수많은 사안들에 대한 시위도 이어질 것이다.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비폭력 기조아래에서도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쪽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참여한 인원이 무려 100만에 육박한다. 당연히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쪽수’가 적다면? 쉽게 무시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까이 예정된 화물연대 사람들의 경우, 적은 인원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100만이 모여 얘기해도 안듣는, 막귀를 가진 정부가 힘없는 적은 ‘쪽수’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줄리 없다. 경찰은 평화적인 시위 문화를 거론하며 폭력시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막기위해 제2, 제3의 업그레이드된 ‘명박산성’을 쌓을 것이다.
이들의 시위 현장이 폭력적인 상황으로 변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는가는 중요치 않다. 경찰이 먼저 폭력을 썼어도 폭력시위에 대한 비난은 언제나 시위자에게 돌아갔던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게 ‘비폭력’을 강요할 수 있는가?
그들이 집단 행동을 하고 폭력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비폭력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지지표명을 할 수 있는지 등등 복잡다단한 문제를 덮어두고 단순히 ‘비폭력’ 세글자만으로 그들을 짓눌러서는 안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폭력인 것이다.
정부나 조중동이 촛불집회의 비폭력적인 면을 칭찬하는 것은 이런 사전 포석일 수 있다. 정신은 썩었어도 머리는 좋은 집단이다. 우습게 보지마라.
현재 촛불집회의 비폭력 기조에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집회는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글자그대로의 의미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 상황은 끔찍하다. 모든 시위에 대해 이러한 ‘비폭력’이라는 간편한 잣대로 판단해버리면 사회적 약자들의 자기 발언 기회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비폭력’이 지배하는 암흑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한가지.
오랜 기간 동안 기득권 세력이 은밀히 추진해온 “착한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가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음모론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착한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인가?
* 위에 동영상이 소리가 안나는데요…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 확장자 k3g)을 티스토리로 올렸을때 소리나게 하는 방법아시는분~~ 좀 알려주세요. PC에서는 들리고… 변환도 해봤는데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