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재밌다. 상업영화로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하정우는 북한 특수공작요원으로 남북한을 수십차례 넘나들며 광화문 어느 빌딩 자판기커피가 맛있는지 잘 알고 있을듯하다. 전지현은 미모가 너무 빛나는게 흠이지만 힘을 빼고 던지는 대사들은, 결혼하면 자연스래 연기가 늘 것라는 생각을 들게하여 미혼 여배우들의 결혼연령을 낮추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석규와 이경영은 각자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에 맞는 배역들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스마트폰에 손을 댈 여유를 주지 않을 만큼 러닝타임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도 훌륭하다. 다만 <베를린>이기에, 인천, 광주도 아니고 <베를린>이기에 아쉬움이 남는게 몇가지 있다.
스파이, 액션물로 <베를린>이 나쁘지 않지만 새로운건 없다. 굳이 베를린을 무대가 되고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남한과 북한의 상황이 소재로 사용되어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색깔의 영화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 냉전시대에는 길거리에 열에 한명은 스파이였을 거라는 뻥이 있을 정도인 베를린이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어느 나라에도 없는 남과 북의 대치상황의 결합은 <본 아이덴티티>나 <미션임파서블> 같은 영화와 다를 거라고 상상하게 하지만 <베를린>은 비슷한 영화다. 무기거래, 비자금 문제 등등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스파이물은 차고 넘친다. 다만 하정우와 류승범이 연기한 북한특수요원들의 액션은 무식, 단순, 과감, 강렬한 움직임으로 신선함을 준다. 그러나 이마저도 후반부에는 여러가지 액션 요소들이 뒤섞이면서 별로 보이지 않느다.
액션 영화들이 주된 필모그래피인 류승완 감독이기에 <베를린>은 의욕넘치는 프로젝트였으리라 생각된다.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의욕때문에 놓친 것도 있는 듯 하다. 베를린이라는 공간, 국제적인 조직들의 음모와 배신 등등이 복잡한 사건들로 얽히면서 정작 중심 이야기가 약해진 측면이 있다. <베를린>은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표종성와 련정희 두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그런데 여러 사건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바쁜 통에 관객들은 결말부에 다다랐을때 두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덜 동화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련정희가 사경을 헤메게 되는데도 안타까움이 덜하게 된다. 련정희와 표종성에게 시간을 더 할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련정희를 더 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건 아니나 이야기의 본질상 그렇다는 얘기다.
아무튼 재밌단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