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스마트폰의 박스를 열때를 기억하는가?
혹 박스가 지저분해질까 커터칼로 봉인스티커를 살며시 잘라낸다. 박스를 열면 고이 모셔진 스마트폰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않았으며 자신이 첫번째 손길이라는 생각에 작은 두근거림이 생긴다. 몇개의 보호용 비닐을 떼어내고 흠집하나 없는 매끈한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그래, 이게 내가 며칠째 웹서핑을 하며 고민한 바로 그 물건이지. 눈부시게 빛나는 화면, 섹시한 뒤태, 설레임 가득한 터치 진동, 숨막힐것 같은 모서리 곡선! 이 물건을 손에 쥐고 있다면 몇달간의 궁핍한 삶은 충분히 참을 수 있으리라.
잠시후, 당신은 아마도 그 스마트폰에 액정보호필름을 붙이고 케이스를 씌을 것이다. 왜?! 그토록 바라던 것을 손에 쥐었는데, 얼마나 섹시한 물건인데, 해괴망칙한 것들로 뒤덮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액정보호필름은 과연 필요할까? 최근 출시된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코닝이라는 회사의 고릴라 글라스라는 어마무시한 강도의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날카로운 송곳같은 걸로 일부러 힘을 주어 긁지않는 이상 웬만해선 흠집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액정화면에 한겹 덧댄다는 것은 원래 화면의 성능을 한풀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토록 열망했던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화면은 흐리멍텅해져버린다. 게다가 액정보호필름의 경도는 고릴라그래스에 비해 형편없어서 한달만 사용해도 흠집이 나고 가장자리에는 먼지가 붙게 된다. 그래서 화면은 원래의 반짝임을 더욱 잃어버리게 된다. 비싼 필름을 붙이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비닐한장에 물값의 1/10~1/20이나 하는 몇만원을 쓴다는게 어이없다. 그 비싼 필름을 붙였다고 강화유리의 파손까지 막아주지는 못한다.
케이스 사용은 정말 이해를 알 수 없다. 케이스는 씌우는건 스마트폰에 대한 일종의 모욕다. 그 스마트폰을 디자인하기 위해 숱한 날을 고민했을 세계최고의 디자이너들에 대한 모욕이다. 예전 같으면 컴퓨터 한대의 기능을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집어넣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었을 천재적인 엔지니어들에 대한 모욕이다. 당신이 산것은 광고에서 본 바로 그것 아닌가? 인터넷 상에서 그렇게 찾아헤매던 그것아닌가? 멋지다며 감탄하던 그 물건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손에 쥐고 왜 만원짜리 케이스를 덮어씌우는가? 이해를 할 수 없다. 흠집이 날까봐 걱정이라고? 흠집이 나서 조금씩 흉해지는 것과 케이스를 씌워서 스마트폰 본연의 아름다움을 한번에 잃버리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생각해보면 간단한 선택아닌가?
게다가 케이스는 가벼운 스마트폰에 어쨋건 무게와 부피를 더하게 된다. 애플이나 삼성 등 전세계 최고의 인력이라는 사람들이 1mm 더 깎아내려고, 1g이라도 더 줄이려고 고생해서 만들어낸 작품에 5mm짜리 케이스와 몇십그램의 무게를 또 더 한다. 이게 아주 작은 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사용해보면 차이가 크다. 아니면 그걸 위해 왜 수천억 개발비를 썼겠으며, 많은 사람이 그 고생을 해서 만들었겠으며 그렇게 광고를 했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몇미리, 몇 그램에 열광하지 않았는가?
휴대기기의 특성상 자유낙하로 인한 파손의 위험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기기의 사망이나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사고로 이어지는 액정 파손의 경우, 케이스는 별도움이 안된다.
만일 흠집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생겼다면 그때 케이스를 사용하면 된다. 아니 그때는 오히려 하우징을 교체하는것도 방법이다. 뒷판과 측면 하우징 정도를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부분 비싼 케이스 정도의 가격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케이스를 씌워서 무겁고 두껍고 볼품없이 쓰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아닌가?
케이스가 필요한 상황은 현재 스마트폰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않고, 몇달 쓰다가 다른 기종으로 교체할 마음이 있어서, 교체한 후에 좋은 값을 받고 중고로 팔아야 겠다고 생각할 때다.
그렇게 액정보호필름과 케이스로 고이고이 스마트폰을 썼다고 치자. 그래서 그나마 나은 상태로 2년이상 썼다고 치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흠집은 생기기 마련이고 그 시점이 되면 새로 출시되는 스마트폰에 비해 성능도 떨어지고 교체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낡은 스마트폰을 중고나라에 잘 팔아봐야 10만원도 못받는다. 중고치고 깨끗하다고 1~2만원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봐야 그동안 산 액정보호필름과 케이스 가격을 더한 만큼도 안된다. 그런데 그동안 당신은 보호필름과 케이스로 인한 사용상의 손실을 계속 보아왔지 않은가.
스마트폰 같은 휴대기기에 케이스를 씌우는 건 마치 미래의 어떤 것을 위해 현재를 보내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기에 스마트폰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받을 까봐 보호막을 치고 실패가 두려워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황금빛 미래를 위해 현재의 빛나는 순간을 눈에 넣지 못한다. 한겹두겹 안전한 삶을 영위하지만 갇혀지내는 삶이다. 그렇지만 어쩔수없는 마모가 생기고 기능은 떨어지고 언젠가 보호막이 필요없는 끝을 맞이한다.
우리들 모두는 세상에 귀한 존재로 태어났다. 탄생은 빛이 났으며 생기넘쳤다. 각자는 모두 일하며, 사랑하며, 꿈꾸며, 노래하며 살아가도록 엄청난 스펙의 조화로운 기능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케이스와 보호필름에 갖혀지내게 한다면 매순간 삶은 손실의 연속일 뿐이다.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상처를 덜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설계된 빛남과 설계된 놀라움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허접한 케이스 따위에 갖혀지내는 것이다.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마음껏 빛을 발하게 하자. 쿼드코어프로세서의 심장이 폭발적으로 뛸수있게 하자. 엄청난 집적회로들이 열심히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자유낙하로 인한 예기치 못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보호막 속에 산다고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는건 아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뻔하지 않은가?
언젠가 마모되고 생채기가 난, 켜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대하게 될 것이다. 그 긁힘을 어루만지며 한때 멋진 쓰임었잖니라고 자부할 수 있도록 지금,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