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미지를 볼때 우리는 이미지 전체를 먼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부분부분 훑어보게 되죠. 이미지 전체를 특징짓는 것으로 색감과 질감을 먼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구도나 형태를 파악하는 것은 다음 과정이니까 우리는 색감과 질감을 보고 어떤 ‘상’을 결정하게 됩니다. 어떤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을 할 수도 있겠죠. 프레임 안에 담긴 피사체가 가진 색상이나 재질에 따라서도 전체적인 느낌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프레임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색감이라는 다소 전문용어스럽지 못한 단어를 썼는데 색상, 명도, 채도와 같은 색의 요소들과 그러한 색채들을 배합하는 방식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전체적인 색의 느낌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아래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색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청색시대라고 불리는 시절의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파란 색감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래는 장미빛 시대의 작품으로 부드러운 붉은 톤의 색감입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의 작품들은 친구의 죽음과 가난, 작가적인 한계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인해 차가운 색조를 중심으로 어둡고 암울한 그림들이 대부분 입니다. 반면 장미빛 시대에는 한 여성과 사람에 빠지고 작가로서 인정 받기 시작하면서 밝고 즐거운 분위기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붉은 색, 복숭아색 등을 주로 사용하여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배어납니다. 이와 같이 두 시기에 소재나 주제 자체가 달라짐과 동시에 전체적인 색감도 달라진 것입니다.
색감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서적인 느낌을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이미지를 보고 차갑다, 암울하다, 어둡다, 칙칙하다, 따뜻하다, 온화하다, 부드럽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쓸때 이것은 대개 이미지 전체가 갖고 있는 색감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로 푸른 색 계열의 색은 차갑다, 암울하다, 냉정하다, 날카롭다 등의 꾸밈말과 연결되고 붉은 색 계열의 색은 따뜻하다, 부드럽다, 온화하다, 여유롭다, 즐겁다 등과 연결됩니다. 물론 느낌이란 게 사람마다 제각각이긴 하지만 색에 대한 어떤 공통된 느낌이란 게 있다는 데는 동의하실 겁니다. 초등학교 때 미술 시험에 “다음 중 차가운 색은?” 과 같은 문제에 답을 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사진이나 영화에서는 필름이나 카메라 설정값 등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색감을 설정하거나 촬영 후 후반 작업을 통해서 새로운 색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영화의 경우에는 하나의 일관된 색감을 사용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분위기에 몰입되게 만들고 그것은 또한 작품의 중심 주제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위에서 부터 차례로 간단히 얘기해 보면,
한 남자의 복수가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는 1.페이백(payback, 1999 ) 은 답답할 정도로 푸르고 어두운 화면이 이어집니다.
2.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2001)는 녹색과 앰버톤(호박색, 황색?)이 어우러진 따뜻한 느낌의 화면을 만들어내면서 주인공 아멜리에가 세상을 보는 따뜻한 내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3.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 2007), 4.세렌디피티(Serendipity, 2001)등에서는 대부분 채도가 높고 따뜻한 계열의 색감으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5.클로저(Closer, 2004)의 경우에는 다소 푸른기가 도는 화면을 만들어주면서 균열되어가는 사랑의 모습을 색감으로도 드러냅니다.
6.살인의 추억(2003)은 촬영 후 블리치바이패쓰(아랫부분 참조. 색감에 대한 얘기도 있습니다)라는 현상과정을 거쳐 채도가 낮아져 마치 빛바랜 사진을 보듯 과거의 사건을 되살려보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